강제징용의 아픔

나의 예비군 이야기

사지 멀쩡한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군대에 가고, 전역하면 예비군으로 편입된다.

예비군 통지서
나에게도 소집통지서가 왔다.

딱히 나도 예외는 아니었고 어제인 3월 26일 예비군 훈련에 다녀왔다. 학생예비군 신분이어서 1년에 8시간만 받으면 땡인 게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나중에 헤매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아마 없을 것 같지만 혹시나 예비군 처음 가보는 사람이 이 글을 읽을 때를 대비해서 무슨 훈련을 어떻게 받았는지만 간략하게 써두려고 한다.

훈련대 입소

학생예비군의 경우에는 보통 당일 몇시까지 학교 정문으로 가면 셔틀버스가 있다. 소집통지서에도 나오기 때문에 일찍 시간 맞춰서 가면 된다. 훈련대가 보통 산길 오지에 있기 때문에 버스 안 타면 좀 피곤해진다.

입소 시 복장의 경우 군복 군화야 당연히 입는 거고, 단 모자는 안 써도 된다. 어차피 쓸 사람도 없을 거고, 도착하면 장구류 줘서 그거 쓰고 다닌다.

예비군 입소등록

훈련대에 들어가면 먼저 입소등록이라는 걸 한다. 줄 서서 신분증 보여주고, 도시락 먹을 건지 선택하고 서명하면 분대를 배정받고, 사단 마크와 명찰, 그리고 웬 워치 하나를 받는다. 훈련평가 합격하면 워치로 알림이 날아오고 그 외에도 식사 신청 여부 등 간단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2018년 휴대폰 사용 허용 이후에 입대한 군필들이라면 알겠지만 국방모바일보안 앱을 깔라고 한다. 외부인용을 깔면 되는데 사실 사진만 안 찍으면 상관없어서 깔지 않았다. 걸리면 퇴소인데 사진을 찍을 용자가 있을까? 있어도 일단 나는 아니다.

입소교육

내가 갔었던 훈련대의 경우 물품 보관함이 있었다. PX에서 뭘 좀 사려고 가방을 가져갔었던지라 물품 보관함에 넣은 다음, 대강당으로 이동하여 배정받은 분대별로 자리에 앉아 일정 안내 및 교육을 받았다.

좀 길었는데 줄이자면 훈련 이렇게 받을거고 조교한테 폭언, 괴롭힘, 훈련 진행 방해, 사진/동영상 촬영, 훈련 중 허가 없는 휴대전화 사용 등을 하면 경고 또는 즉각 퇴소 조치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상식적으로 누가 조교한테 그럴까 싶긴 하겠지만 상식을 뛰어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딱히 이상한 안내는 아니긴 하다.

받은 훈련들

개인화기

현역은 K2 소총을 사용하는 것과 별개로 예비군은 아직도 M16을 쓴다. 당시 비가 왔던 관계로 실내사격장에서 실시했는데 삽탄 및 사격 연습을 했다. 현역 때 훈련소에서 영점사격 탄착군 형성을 못 할 뻔했어서 불안했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그러진 않았다.

참고할 점이라면 총소리가 정말 크다. “그럼 작겠냐?”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은.. 헤드셋을 따로 주긴 하는데 소음에 민감하다면 이어플러그를 따로 달라고 요청을 하든지 미리 준비해서 쓰든지 하자.

핵 및 화생방

MOPP라고 하는 그거 맞다. 정말 다행히도 실제로 CS탄을 들이마시진 않고 그냥 12초 내1에 방독면 착용 및 구령 전파를 잘 하는지만 본다. 핵 공격 대응 요령 같은 것도 배웠는데 사실 핵이 정말 터지면 어? 할 새도 없이 저 세상 가있을 것이기 때문에 쓸모가 있는지는 글쎄.

시가지 전투

훈련소에서 지겹도록 들어봤을 서서쏴, 무릎쏴, 엎드려쏴, 쪼그려쏴 등등 사격자세와 시가지에서 적과 전투 시 개인, 분대별 전투요령 등을 배운다. 이때부터 필기평가를 보게 하는데 중학생 정도만 돼도 영상 안 보고 다 맞힐 수준이라서 크게 어려운 건 없다. 물론 상식을 뛰어넘는 사람들은 어딜 가든 있다.

그렇게 배우고 나서는 또 연습을 하는데 실제로 사람을 쏠 수는 없으니 영상모의사격이라는 걸로 대체한다. 가상의 적이 나오면 쏴야 되는데 내가 있던 분대는 중반까지는 잘 버티다가 후반에 거의 다 죽었다. 그래도 합격은 하긴 했다.

점심식사 및 PX 털이

오전 교육을 다 마치면 즐거운 점심식사 및 PX 털이 시간이다.

케바케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긴 한데 내가 입소했던 훈련대는 식사 신청을 안 했어도 일단 무조건 확인하고 나서 PX 이용이 가능했다. 급하게 밥을 먹고 PX로 달려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람이 미친 듯이 많아서 제대로 된 이용이 불가능했다.

혹시 이 글을 본다면 훈련대에 PX가 있는지, 이용 가능한지 먼저 확인하고,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식사 신청 하지 말고 PX 가서 살 거 사고, 점심도 거기서 떼우는 걸 추천한다. 도시락은 8000원이라는 가격 치곤 나쁘지 않았는데 PX 물가가 워낙 사기적이다 보니 차라리 그 돈으로 PX 터는 게 낫다.

대충 사회 돈으로 샀으면 9만원 정도 나왔을 양을 샀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안보교육

민간인이어도 물론 안보교육은 필요하긴 한데.. 뭔가 현역 때 정신전력교육 받는 느낌이었다. 꼬꼬무를 카피한 것 같은 내수용 다큐 하나를 틀어줬는데 제2연평해전 관련된 얘기를 했다.

북괴의 도발에 전사한 6명의 군인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되겠지만, 최소한 국가가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 준 다음에 해야 할 얘기가 아닌가.. 싶다.

전투부상자처치

현역 때 받은 교육 그대로였다. 정말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아서 딱히 덧붙일 말이 생각이 안 난다. 심폐소생술, 매듭법, 지혈법, 압박법 등등 현역 때 배운 내용들을 그대로 알려주니 잘 보고 따라하기만 하면 된다.

퇴소 및 귀가

모든 교육이 종료되면 입소할 때 모였던 그 대강당으로 다시 모인 다음에 간단하게 퇴소 교육을 진행하고, 입소할 때 줄 섰던 곳으로 다시 가서 사단 마크, 워치, 명찰을 반납하고 집에 가면 된다.

입소할 때와 마찬가지로 셔틀버스가 운행되는데 빨리 가려고 자차를 가져온 사람도 있었다. 역시 아무리 예비군라도 군대의 PTSD를 느끼게 하는 뭔가가 있는 모양이다.

  1. 원래 9초였는데 보충역 기준인 12초로 완화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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